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멋진 신세계 (문단 편집) === 무스타파 몬드 === 서유럽 주재 세계 총통(World Controller). 전 세계에 10명뿐인 인류 지도자 중 한 명이라고 한다. 본작은 인공부화소를 견학하던 견습생들이 그에게 역사에 대한 이야기[* 이 작품의 배경]를 듣는 장면에서 시작한다. 총통이 되기 전에는 뛰어난 물리학자였다. 대개 이 작품의 문명 세계를 상징하는 전형적인 인물이지만, 사실 문명 세계를 더 발전시킬 수 있는 뛰어난 아이디어가 사용되지 못하는 것에 대해 탄식한다든지, 그의 비밀 금고에 금서가 잔뜩 쌓여있다든지 하는 등 일단 어느정도의 문제의식은 가지고 있다. 후반에 한 작가가 낸 책을 금서로 지정하는 것에 대한 허가를 내리는 장면이 나오는데, 그 동의서에 "현재로서는 사회에 허용될 수 없다"라는 뉘앙스의 글을 써서 앞으로의 사회 변화에 대한 생각도 갖춘 인물이라는 인상을 주지만... 사실 가장 악질적인 희망의 적이자 본작의 최종 보스격 인물. 사실 무스타파 몬드야말로 이 디스토피아적 세계의 가장 악랄한 원흉이라는 독해가 오히려 주류다. 다른 인물들이 모순을 깨닫지 못해서 체제에 순응하는 것과는 달리, 무스타파 몬드는 '''체제의 어리석음을 알면서도 체제를 지키기로 결심한 인물'''이다. 즉, 한계를 넘은 깨달음을 얻은 인물이기는 하지만, 자신이 깨달은 것을 악용하는 인물에 가깝다. 과거에 일어난 세계대전, 그리고 전쟁으로 몰락한 사회에서 조차 한정된 자원과 직업을 두고 큰 혼란이 야기됐던 반면에, 현재의 시스템은 매우 안정적이며, 마약을 통해 상위부터 하위까지 모든 계급원들이 만족을 하며 사회에 동화되었기에 현재의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라고 주장하며 행동한다. 작중의 모습을 보더라도 다른 인물들은 세익스피어의 작품이 '이상하다'고 무시해 버리지만, 무스타파 몬드는 그 작품의 가치를 알기 때문에, 그 작품에 감동을 받은 사람들을 섬으로 보내서 사회로부터 격리해야 한다고 판단할 수 있는 인물이며, 헬름홀츠에 대해 개인적인 호감을 표시하기는 하지만 그와는 별개로 그가 기존의 사회를 무너트릴 여지를 차단하는 인물이기도 하다. '''진실을 알고 있으면서도 진실을 오히려 체제 유지에 활용하는 인물상은 [[1984(소설)|1984]]의 [[오브라이언]]과 매우 유사하다.''' 그래서 여러 문학 수업이나 평론 등지에서 둘이 같이 언급되는 사례가 많다. * 이 작품의 배경세계(문명세계)는 <사회를 통제하기 용이하도록 의도적으로 무지를 조장>하고 있으며 이를 위해 <사회를 발전시킬 수 있는 창조적 재능을 가진 인물은 '섬'으로 격리>해버리는 등 <사회의 발전과 진보 자체에 대한 거부>가 강하게 드러나고 있는 공간이다. 그러나 이에 대해 <엘리베이터에 굳이 필요하지도 않은 엘리베이터 운전사가 있다> 거나, <제트기보다 효율이 떨어지는 로켓을 대륙간 교통 수단으로 이용한다> 같이 현대 독자의 관점에서 본 작중 사회의 기술적 비효율성을 <작중 문명 세계가 효율적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다는 증거>로 보고 이것이 <작중 사회의 발전이 억압된 결과>라고 해석하는 것은 오독의 여지가 아주 큰 독해이다. SF 작가나 평론가들이 흔히 말하듯이 SF는 과학기술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모든 창작물이 그렇듯이) 인간과 인간의 사회에 대한 이야기이고, 과학기술은 그 이야기를 풀어내기 위한 소재이자 도구이기 때문이다.[* [[무협]]지가 그걸 보고 무술을 배우라고 나온 책이 아니라 무술을 이용한 주인공의 액션활극을 보고 즐기기 위한 책인 것과 마찬가지이다.] '''이 작품은 30년대에 나온 작품이고, 따라서 그 이후에 등장한 기술적 개념들에 대해서는 작가가 모르기 때문에 작중에 등장시키지 못한 것인데 이런 기술적 개념들이 나오지 않는 것이 '작가의 주제의식 중 일부'라고 해석할수는 없는 것이다.''' 예를 들어, 이 작품이 나온 1932년에는 아직 [[분자생물학]]이라는 개념이 탄생하지도 않은 시기였고[* 분자생물학이라는 표현을 처음 사용한 것은 1938년 록펠러재단의 워렌 위버였고, 본격적으로 분자생물학 분야의 연구가 시작된 것은 52년 [[제임스 왓슨]]과 [[프랜시스 크릭]]이 DNA 이중나선 구조를 밝혀낸 이후였다. 이 둘이 노벨상을 받고, 다음해 수상자가 저자의 동생이다.] 따라서 세포 복제를 통한 클론이라는 개념 자체를 상상할 수 없었기에 수정란의 난할을 통해 일란성 [[쌍둥이]]의 발생을 유도하는 방법으로 복제 인간을 양산한다. 하지만 여기서 중요한 것은 '어떤 기술을 사용했느냐'가 아니라 '사회의 부품이나 도구처럼 사용하기 위해 기술적인 방법으로 인간을 양산한다'는 아이디어이고 이 아이디어에 대해 서술하기 위해 작가는 자신이 아는 당대의 최신 기술적 개념을 사용한 것이다.9년 전쟁에 대한 묘사 역시, 작가는 [[핵무기]] 라는 개념에 대해 몰랐지만 '기술의 발전을 통해 인류의 문명과 종으로써의 생존 자체를 위협할만한 위력의 무기가 만들어질 것이다'라는 작가의 예측은 이후 [[냉전]] 시대의 핵무기 공포까지 꿰뚫어본 예언적 울림을 가지고 있는 것. 다른 작품의 예를 들어본다면 [[로켓]] 개념에 대해 잘 몰랐던 [[쥘 베른]]은 [[달 세계 여행]]에서 달까지 가기 위한 수단으로 대포의 포탄을 제시했지만 여기서 중요한 것은 '지구의 중력에서 탈출할 수 있는 속도로 비행할 경우, 지구 바깥의 우주 공간으로 나갈 수 있다'는 아이디어이고, 이 아이디어가 후대의 많은 과학자와 공학자들을 자극하여 우주 비행에 대해 연구할 동력을 만들어낸 것. 이를 두고 '[[스페이스 건|대포알을 이용한 유인우주여행]]은 불가능하니 쥘 베른의 아이디어와 우주 비행은 아무 상관이 없다'고 말하는 사람은 없다. 애초에 작품 내에서 '사회 발전의 정체'에 대한 묘사는 과학 기술보다는 사상과 문화에 대한 영역에 더 치중해 있기도 하거니와, 현대인의 관점에서 이 이야기를 재해석한다면 차라리 잡 쉐어링이나 임금피크제, 적정기술이나 '지속 가능한 성장' 개념처럼 '높은 효율 추구를 포기하는 것이 오히려 사회의 안정과 사람들의 행복에 기여할 수도 있다는 인식의 전환'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 더 건설적일 것이다. 간단히 말해 이 작품에 대해 논할 때는 과학적 관점이 아닌 사회문화적 관점에서 논해야 올바르단 얘기다.[* 게다가 [[자유의지]]에 회의적인 과학적 세계관을 가지고 이 작품을 논한다면 작가의 원래 의도와는 다른 해석이 튀어나올 것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